읽고 단상쓰기#11일차
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1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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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쓰기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다산의 취몽재의 풀이가 돋보인다. 이름난 술꾼인 황상의 아버지 황인담이 자신의 집을 아예 술 마시다 꿈꾸듯 간다는 [취몽재]라 짓겠다며 글을 청한다. 평소 음주를 멀리하라 가르치던 다산은 이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전시켜 ‘취했으나 취하지 않을’의 뜻풀이로 풀어내었다. 글자도 음도 뜻도 황인담에게 더없는 맞춤이 없을 만큼의 유용함이였다. 문인의 실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러나 끝내 황인담은 술병으로 환갑 전에 생을 마감했다. 훌륭한 가르침에도 받는 자의 의지와 깨달음 없이는 그 완성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공평한 듯 애통하다. 곁눈으로 지켜보는 내가 이러한데 다산의 안타까움은 오죽했을까. 그 허망한 마음이 [황상의 아버지 인담만사]와 [장다리꽃의 나비를 읊다]로 남음에서 짐작해 본다.
인상 깊은 부분
굴원은 취한 사람이다. 성을 내어 곧은 말을 하면 반드시 몸을 망치고, 능력을 닦아도 마침내 재앙을 부르르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비록 취한 바는 달라도 거나하게 크게 취한 사람이다. 때문에 분을 내어 크게 통탄하며 스스로 취하지 않았음을 변명하여 “나 홀로 술이 깼다”고 말했던 것이다. 장자는 이미 깬 사람이다. 능히 오래 사는 것과 요절하는 것을 같게 보았으니, 이는 환하게 깨달은 자라 하겠다. 그래서 “꿈꾸는 중에 또 꿈을 꾼다”고 했다. 그럴진대 스스로 돌이켜본 것을 살펴 ‘또렷하다’고 하고 ‘깨었다’고 하며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모두 술에 절고 깊이 잠들었다는 증거일 뿐이다. 능히 스스로 취몽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혹 맨정신으로 깨달을 기미가 있는 자인 셈이다.(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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