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단상쓰기#12일차
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1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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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쓰기
다산의 [제황상유인첩]을 보니 누구나 소망할 집터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었다. 다산은 청복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나름 소박한 선비의 집터를 쓴 거 같다. 그러나 산 좋고 물 맑은 확 트인 곳에 순창 설화지로 도배한 벽으로 남향집을 지어 천 삼사 백 권의 책을 두루 갖추고 앞 뜰엔 연꽃 수십 방을 띄울 크기의 연못에 붕어를 키우고 물이 넘칠 때 닿는 땅엔 채마밭을 만들고 더 나아가 직접 농사짓지 않아도 될 전답까지 확보한 뒤, 뒤 뜰엔 잠실을 갖출 숲까지 두루두루 소유한 그런 집을 갖는다는 건 왠지 열복과 더 유사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맘 맞을 시원한 성격의 스님까지 집 근처에 계시다니 열복으로 돈을 쏟아부어도 이 같은 환경이 쉽게 얻어질 거 같지가 않다.
이미 열복에 갔다 온 다산이기에 그 정도면 청복인건가 싶다가 앞마당 연못이며 뒤뜰 숲까지 갖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다보니 문득 그 모습이 꼭 맞는 강릉의 선교장이 떠올랐는데 그곳이야말로 조선시대 권세가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하늘이 아껴 잘 주려 하지 않는 복이 청복이라지만 다산이 소망한 집터는 일단 열복을 맞아야 청복의 집터로 갈 확률이 올라가는 게 아닌가 싶어 청복의 경계가 난해해졌다. 황상에게 청복을 알려준 다산이지만 열복으로 일단 가라는 의미에서 황상에게 과거시험을 보라 권했던 건가. 황상은 열복 없는 청복을 원하느라 다산의 권유를 계속 미룬게 아닐까. 솔직히 이 부분은 스승과 제자 중에 누가 더 욕심이 많은 건지 헷갈린다
인상 깊은 부분
세상에서 말하는 복에는 두 종류가 있다. …중략… 사람이 이 두 가지 가운데서 택하는 것은 다만 그 성품에 따른다. 하지만 하늘이 몹시 아껴 잘 주려 하지 않는 것은 청복이다. 그래서 열복을 얻은 사람은 아주 많지만 청복을 얻은 자는 몇 되지 않는다.(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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