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단상쓰기#9일차
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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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쓰기
첫 만남의 인사전에 먼저 시를 지어 보내고 다시 시로 화답하는 예의를 갖춘 멋들러진 인사법이 인상 깊었다. 스승과 아버지를 통해서 들은 것밖에 없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 인사글을 보낸다는 게 현대에선 불가능에 가까워 귀하게 느껴졌다.
스승과 아버지를 통하는 귀한 만남이니 예의를 다하는 것이 당연했다 해도 만남의 시작을 이리 진심으로 공을 들이니 한번 마주치는 인연이 대를 이어가며 귀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겠구나 싶다. 시로 첫인사를 하고 만나서는 돌림자로 시 짓기 시합을 하며 인연을 다지니 선비들의 시 사랑이 대단하다. 그렇게 만난 귀한 만남이 꼭 같은 정성과 예를 갖추어 가지를 치고 아름답게 뻗어나간다. 혜장이 다산의 아들인 학연을 오직 공부 생각뿐인 아버지와의 산 공부방에서 빼내어 바람을 쐬도록 배려한 것은 한참 나이에 재앙을 만나 크게 상심했을 다산의 아들을 어여삐 돌보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리라.
혜장의 배려는 정확했던 거 같다. 학연이 저렇게 세세한 유람기를 남긴 것을 보니 황상과 함께한 듀륜산 유람이 너무도 즐거웠나 보다. 좋은 만남과 함께 자연을 유람하며 위로받는 학연의 즐거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인상 깊은 부분
5년간 괴로이 고생하다가
다시금 남쪽 땅 걸음 하셨네.
푸른 도포 지존을 뵈었던지라
그 옷소매 대궐 버들 비치는도다.
슬프다 이미 모두 지난 일이니
마침내 가을 풀과 함께 썩으리.
금과 옥돌 진작에 나왔다 해도
반짝이는 광석으로 머문지 오래.
세모라 서리 눈은 자주 내려도
해진 옷을 그 누가 취해주리오… 중략…(p.193)
황상은 이런 마음을 담아 정학연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말없이 황상이 보내온 시고를 아들에게 건네는 다산의 표정 속에 잠깐 득의가 비쳤다.
시고를 받아 읽던 아들의 눈이 동그래졌다.(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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