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단상 쓰기

나의 인생 #22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쏜 총

카민셀 2024. 10. 22. 09:33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22일차

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22일차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쏜 총
267p~282p

 

 

단상 쓰기

마르셀의 이후의 삶에 또 다른 슬픔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죽음이 당연했던 곳에서 끝내 살아남았으니 어느 정도의 안도와 기쁨이 먼저 그들의 삶을 안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이유 없는 죽음들과 동료와 부모와 다정했던 형의 속절없는 죽음을 앞으로의 삶 속에서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특히 다음 세대를 웃고 울며 나와 함께 우리의 삶을, 나와의 노년을 서로 바라보며 살아냈어야 할 내 형제의 느닷없는 죽음은 앞으로의 내 삶 어느 순간에서도 온전한 안도와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엄중한 선고와 같이 느껴진다.  

'왜 하필 우리가 살아남았는가'라는 마르셀의 통탄에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줄줄 흘러내린다. 앞으로 아마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할 이 살아남은 자의 외로운 고통들이 여전히 무심하고 멀쩡한 세상과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내야 하는 건지 앞으로의 마르셀의 삶이 벌써부터 아프다.

 

 

 

 

인상 깊은 부분

전에 우리는 살아남고 싶어하지 않았는가. 살아남으려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지 않았는가. 굴욕과 수모를 견디지 않았는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굶주림을 참아내지 않았는가. 수없이 많은 두려움 속을 방황하지 않았는가. 죽음의 공포는 수년 동안 우리의 일상사였다. 그런데 전쟁의 끝이 다가올수록 해방된 우리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의문이 있었다. 아주 단순한 의문이었다. 왜 하필 우리가 살아남았을까? (P.280)

 

토자아는 내 옆애 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얼굴을 바라 보았다. 둘이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음을 잘 알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느낀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고, 행복이 아니라 강렬한 분노였다. 다시한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이, 어둠고 무거운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우리 머리 위로 몰려오는 저 구름은 영원히 걷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사는 동안 평생 우리 옆에 있으리라는 것을.(p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