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9일차
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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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쓰기
유대인들이 환적장에 끌려 나와 가스실로 향하는 열차에 줄을 서서 타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들이마셨던 숨을 내뱉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급기야 부모님을 회상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겨우 내뱉던 숨마저 한동안 아예 멎어버렸다.
죽으라면 고분고분 죽으러 가는 무기력한 유대인의 행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가스실로 가는 것을 알고 있는 음악가가 마지막 소지품으로 악기를 들고 온 이유가 자신이 사랑했던 음악이나 악기에 대한 마지막 의미 추구가 아니라 아니라 독일군에게 끝까지 자기 한 목숨을 기대어 보려는 마음이었다는 게 이해가 가면서도 끝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유대인을 수천수만을 모아놔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낙관론을 펼치며 당장 눈에 보이는 위험마저 부인하는 완벽한 무기력에 빠진 이유가 뭘까. 이건 뭔가 잘못됐다. 그 당시 상황에서 유대인에 대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기를 바란다.
인상 깊은 부분
왜 악기를 들고 왔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거의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독일인들은 음악을 사랑하잖아요. 무슨 곡이라도 하나 들려주면 가스실로 안 보낼지도 모르니까요.” 트레블링카로 이송된 음악가들 중 되돌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p.233)
그때가 부모님을 뵙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도 두 분의 모습이 선하다.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던 아버지, 베를린 기념교회 부근의 백화점에서 산 멋진 트렌치코트를 입은 어머니의 모습이.(p.234)
다음날 나는 ‘환적장’에서 일하던 유대인 민병대 지휘관을 만났다. 게토에서 몇 주 동안 우리 이웃에 살았기 때문에 그 거칠고 난폭한 남자와 안면이 있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당신 부모님에게 빵을 한 조각 드렸어요. 그 이상은 그분들께 해드릴 게 없었어요. 그리고 열차에 올라탈 때 도와드렸습니다.”(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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