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23일차
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2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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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쓰기
지금까지 마르셀의 자서전을 읽는 내내 생소한 것은 마르셀의 문체이다. 번역본이니 언어에서 오는 간극은 있겠지만 이 두꺼운 책의 중반을 넘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타인을 관찰하여 써 내려간듯한 절제된 표현을 보면서 아마도 마르셀의 성향이나 취향에 그 이유가 있는 건가 궁금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르셀을 공산당에 크게 열광시켰던 [공산당 선언]의 문체는 격정과 수사와 풍부한 비유들 이였다고 하니 마르셀에 대한 나의 추리는 다시 원점이 되었다.
그나저나 전쟁에서 이겨도 이긴 자들이 또 다른 난리들이다. 인간 사회는 싸움 없인 평화가 없나 보다. 애초에 평화로운 평화를 바라는 게 문제인 건가. 그 생지옥에서 살아남아 결국 또 갇혔다. 지긋지긋할 거 같다. 29세의 나이에 무(無) 맛을 볼 만도 하다.
인상 깊은 부분
당시 내가 폴란드 공산당에 가입한 데에는 독일문학도 조금쯤 일조했던 것 같다. 19세기 독일 산문 중의 하나가 어렸을 때부터 내게 큰 인상을 주고 나를 열광시켰다. 격정과 수사와 풍부한 비유로 나를 사로잡고 압도한 그 호소문, 바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었다.(p.291)
나는 29세의 나이로 벌써 숱하게 많은 일들을 겪었다. 내 삶에는 화창한 날과 흐린 날, 화려함과 비참함이 끊이지 않았다. 내 정치적 삶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럴 만도 했다. 직업교육을 받지 않은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좋을까? 나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많지 않은 날들을 살아온 삶에서 내가 그런 무와 마주한 것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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