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17일차
민희식 옮김 (문예출판사)
#17일차
|
단상쓰기
엠마의 죽음과 장례식 앞에서 샤를도 루올도 오메도 각각 다른 행동을 보인다. 특히 흙무덤에 함께 파묻히겠다던 샤를도 조금 지나자 진정이 되어 막연한 만족감까지 느끼는 장면과 담배를 여유롭게 피던 루올 노인의 모습에서 7년 전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났다.
71세 평생을 질병으로 인한 입원이나 별다른 질환이 없으셨던 분의 느닷없는 죽음이었다. 한밤중에 호흡이 안돼서 119 응급차를 불렀고 그대로 중환자실로 들어가신지 5시간 만에 돌아가셨다. 주된 원인은 면역력 저하 시기인 여름 폭염의 끝자락에서 어디선가 감염된 바이러스성 급성폐렴이 원인이었고 아니 그보다는 치료의 골든타임인 3~4일을 놓친 2차 원인이 더 큰 이유였다. 증상이 시작된 4일이 지나버리는 동안 곁에서 지켜보던 아버님은 단순한 소화불량으로 생각했다고 말씀하셨다.
응급실을 통해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신지 2시간쯤 되었을 때 아직 희망은 있으나 만약을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설명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1시간이 더 흘러서 저녁 8시쯤 되었을 때 지금은 밥 먹을 상황이 아니지 않냐는 나의 만류에도 시누이의 권유에 동의하는 아버님은 식당으로 향했고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보호자 자리를 지켜달라는 간호사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으나 식사를 다 마치고 갈 것인가 식사를 중단하고 병원으로 갈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어떻게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느냐의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어머님은 그 뒤 2시간쯤 후에 의식 없이 돌아가셨다. 나는 7년이 지나도 그날의 장면을 -장담컨대 앞으로도 영원히- 설명할 수 없는 괴리감과 이유를 모르는 자괴감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후 3일장과 49재를 치르며 지켜봐야만 했던 몇 가지의 장면도 돌아가시던 날의 그것과 거의 동일한 난해함으로 몹시 힘들었고 불편했다. 이후 지인의 장례나 사망 소식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 어려움은 죽음과 슬픔에서 비롯된것이 아닌 다른 이유라는 것과 각자의 애도 방법에서 오는 차이점 때문도 아니라는 것만이 또렷할 뿐이다.
인상깊은 부분
사람들이 모두 그를 끌어냈다. 조금 지나자 그도 진정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겨우 이제는 일이 끝났다는 막연한 만족을 느낀 때문일 것이다.
루올 노인도 돌아가는 길에는 한가하게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오메는 내심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오메는 또 비네 씨가 장례에 참석하지 않은 일이며, 튀바슈 씨가 미사가 끝나자 ‘도망가버린’ 사실이며, 공증인의 하인인 테오도르가 (관습으로서 검은 옷쯤은 어떻게 마련할 수가 있었을 터인데도) 푸른 옷을 입고 온 것 등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퍼뜨리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여기저기로 왔다 갔다 했다.
(3부 9, 10장 중에서 - 문예출판사)
'읽고 단상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탄불>#1일차-1, 2, 3장 (1) | 2024.11.25 |
---|---|
보바리 부인#18일차-3부 11장 (1) | 2024.11.17 |
보바리 부인#16일차-3부 8장 (3) | 2024.11.15 |
보바리 부인#15일차-3부 7장 (0) | 2024.11.14 |
보바리 부인#14일차-3부 6장 (2) | 2024.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