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15일차
민희식 옮김 (문예출판사)
#1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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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쓰기
싫어하면 용서도 빌 수 없다는 엠마. 자신을 내팽개치는 사치와 허영은 스스로를 얼마나 망가트리는지. 이로 인한 엠마의 어리석음의 사악도가 생각보다 높다. 샤를 앞에 이토록 단단하고 철저한 파국을 켜켜이 만들어 놓고도 좋아할 수 없는 사람에겐 용서조차 빌 수 없다는 말에 엠마 삶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보이는듯했다.
도대체 성장기 그녀의 내면 심리의 기초공사는 어떤 재료들로 만들어진 걸까. 아무리 상대가 싫다 해도 명백한 내 잘못에 대한 마지막 양심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비는 것은 상대방을 싫어하고 좋아하고의 문제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의 문제임을 엠마가 알았다면 엠마의 삶이 좀 더 편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비는 것은 사실은 스스로를 구해내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잡는 일이고 결국은 모두를 위한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누군가가 엠마에게 친절히 알려주었다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엠마의 주변엔 쾌락과 허영과 사치의 달콤함을 설명하는 사람들뿐 현명한 조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론 샤를에게만은 절대로 용서를 빌 수 없다는 엠마를 보며 엠마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미움에 가려진 욕망에 가까운 샤를을 향한 어떤 감정이 있는 것인가 의심되었다. 용서를 빌지 않아도 샤를의 용서를 자신하는 보바리 부인이듯이 내가 생각한 지금까지의 보바리 부인도 샤를에게 간단히 용서를 빌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나친 미움은 지나친 관심이라고 그에게 만은 절대 용서를 빌 수 없다는 건 샤를에 대한 강력한 애증(애정과 증오 사이에선 애정이 먼저였다.)이 그녀 안에 또렷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깊은 부분
남편은 몹시 흐느껴 울겠지. 그리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겠지. 하지만 그 놀람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마침내는 나를 용서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엠마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중얼거렸다. “나를 알게 된 대가로 백만금을 내놓는다 해도 결코 좋아할 수 없는 남자인 그런 남자에게 용서를? ……싫어, 싫어, 아, 정말 안 돼!”
남편이 자기에게 콧대를 높일 것을 생각하자 엠마는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첫째 자기가 고백하든 안 하든 이 사실은 지금, 아니면 오후, 적어도 내일까지는 남편에게 알려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 끔찍한 장면을 기다리다가 남편이 관대한 태도로 가하는 압박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뤼르의 집에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서 어쩐단 말인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내볼까. 그것도 이미 때가 늦었다. 이제 엠마는 조금 전의 그 남자에게 몸을 맡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때 오솔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었다. 그는 울타리 문을 열었다. 그의 얼굴은 회칠한 벽보다 더 창백했다. 엠마는 층계를 뛰어내려가 재빨리 광장으로 도망쳐버렸다.
(중략)
로돌프 생각이 마치 어두운 하늘을 달리는 번갯불처럼 마음속에 휙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친절하고 다정하고 마음이 넓었다. 설사 그가 처음에는 다소 자기의 말에 주저할지라도 곧 교태를 부려 옛 사랑을 상기시켜 자기 일을 돕게 할 수 있다. 그것만은 자신 있다. 엠마는 당장에 위셰트로 떠났다. 전에 그녀를 그토록 화나게 했던 장본인에게 스스로 몸을 바치러 달려가고 있다는 것도, 또 그것이 바로 몸을 파는 것이라는 것도 그녀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3부 7장 중에서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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