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 오르한 파묵 #3일차
이난아 옮김 (민음사)
#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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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쓰기
유복하고 번성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몰락으로 접어들어 가난과 불행의 과정으로 이어져 부모의 잦은 불화와 가출을 감당하며 자라나야 했던 오르한의 어린 시절이 번영과 풍요 후 쇠락과 상실을 거쳐 슬픔과 비애로 장식된 이스탄불의 과정과 닮아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흑백의 이스탄불에 더 큰 비애로 더해진 부모의 잦은 가출이라니 가난이니 우울이니 패배감 등의 개념을 아직 눈치채지 못할 어린 시절에 대해 시종일관 우울함으로만 써내리는 오르한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부모의 가출이라니, 아직 어린 나를 회피하는 나의 엄마라니 작은 발로 딛고 있는 세상의 온 땅이 흔들렸을 것이다.
이런 오르한에게 다행인지 운명인 것은 그림과 문학에 남다른 흥미가 있었다는 것. 세세한 그림을 보며 섬세한 상상을 했으며 스스로 글자를 탐구하고 이모가 사준 꽤 많은 책들을 외우도록 읽고 가슴속 깊이 숨겨진 슬픔과 비애의 감정까지 만들었으니 오르한은 이제 앞으로 언제가 됐든 세상에 토해낼 어떤 씨앗을 품게 된 거 같다.
상실과 슬픔이 꽤 빈번하게 예술을 탄생 시킨다는 것을 떠올린다. 오르한의 코앞에서 사라진 이스탄불의 번영과 행복을, 흔적 없이 매정하게 사라져버린 나의 도시를 멜링의 그림을 볼 때마다 그득한 상실과 슬픔으로 마주하면서도 기꺼이 즐겼던 것처럼 말이다.
인상 깊은 부분
이모의 남편인 세브케트 라도는 젊은 시절 시인이 되지 못하고, 그 후 신문기자와 편집인을 지냈으며, 그 당시 터키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주간잡지 <하야트>를 발행하고 있었다. (중략) 나를 들뜨게 했던 것은 단지, 이모부가 발행하고, 읽고 쓰는 것을 배운 후 이모가 우리에게 선물해 준, 하도 읽어서 외워 버린 수백 권의 어린이 책 (천일야화 선집, 도안 카르데쉬 잡지 시리즈, 안데르센 이야기, 발명과 발견 백화사전)이었다.(p.126)
하지만 내 슬픔의 뒤에는, 부모님의 다툼, 아버지와 삼촌의 연이은 부도로 인한 빈곤, 재산 분쟁을 간접적이고 복잡하고 순진한 형태로 인지한 부분도 있었다. 나는 나의 고민을 전적으로, 성숙하게 인식하고, 이것과 직면하고,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하거나 최소한 아픔을 밖으로 드러내는 대신, 내 이성의 초점을 변환하고, 나를 기만하고 잊는 놀이들을 함으로써 이를 숨겨진 감정으로 만들었다.(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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