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단상 쓰기

<이스탄불>#5일차-11, 12, 13장

카민셀 2024. 12. 2. 20:34

이스탄불 - 오르한 파묵 #5일차

이난아 옮김 (민음사)

 

#5일차
11장.  네 명의 외롭고 슬픈 작가
12장.  할머니

13장.  학교생활의 지루함과 즐거움


 

오르한파묵과 할머니 - 이스탄불

 

 

 

단상쓰기

오르한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학교생활을 읽으며 나의 유년기를 함께하셨던 외할머니와 나의 초등시절의 학교생활을 떠올렸다. 나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오르한과 비슷한 맥락이거나 좀 더 애틋한 일상이 추가된 정도였으나 학교생활에 대한 기억은 오르한과 너무 달라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바로 게으르고, 자존심도 없고(그게 뭔지 모름), 둔감하고, 멍청한 쪽이라고 기억되고 있어서 혹시 이것이 위인과 일반인의 차이점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게다가 ‘삶의 어두움과 반 친구들의 영혼으로 열리는 “그렇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자신에게 묻곤 했었다는 게 무슨 말일까. 아니 그보다 저런 생각을 글을 읽기 시작하는 시기에 했었다는데 아마도 8~9살쯤이 아닐런지? 나는 그 시기엔 학교생활이나 학교 친구들에 대한 기억보다 하교 후 해가 저물도록 소꿉놀이와 술래잡기를 하느라 온 동네 대문과 마당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함께 사셨던 할머니가 저녁 먹으러 그만 들오라는 소리에 그제야 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대부분이어서 예술은 특히 문학의 재능은 이미 어릴 적부터 다른 생각을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은 부분

나는 매와 모욕의 순간에 단순하지만 강한 호기심으로 어떤 아이들은 왜 그렇게 더 게으르고, 자존심도 없으며, 둔감하고, 멍청하거나 “그렇게 될 수 있는지”를 나 자신에게 묻곤 했다. 하지만 삶의 어두움과 반 친구들의 영혼으로 열리는 이 물음에, 그 당시 글을 읽기 시작하여 보았던, 사악한 사람들은 모두 입이 비뚤어지게 그려진 만화도, 아이 같은 나의 직관도 답을 주지 않아 나도 질문을 잊어버리곤 했다. 이 모든 것에서, 학교라는 곳은 실상 기본적인 질문에 답을 주지 않고, 단지 우리가 그것들을 삶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도와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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