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단상쓰기#16일차
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1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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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쓰기
새옹지마가 따로 없다. 다산의 유배가 풀리고 벌어지는 상황들을 읽다 보니 다산에겐 차라리 18년의 유배 기간이 천복이 아니었나 싶다. 소실을 들였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 유배에서 풀리자마자 팽개친 이유를 본처의 속 좁음에서 찾으려는 필자의 시선도 유감이다. 강진의 삶이 척박하다며 소실을 들였다지만 서울의 본처도 어느 날 벼락 맞듯 사라진 가장을 기다리며 어린 자녀들과 어려움 살림 속에 한창때의 긴 세월을 홀로 견디어낸 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 시대의 풍습이 어찌하였든 간에 글과 입으로 시종일관 보여준 인물의 뛰어남과 상황의 비장함이 범상하고 애틋해야 할 텐데 벌어지는 현실은 지극히 어느 쪽의 감동과 귀함도 없이 일반적이고 세속적이라 처음과 끝이 맞지 않아 어긋나버려 반듯하게 높이 쌓아 올리기엔 불안한 궤짝처럼 되어버렸다.
게다가 유배 기간 제자들의 위로와 받듬을 받으며 미래를 약속하였으나 해배 후엔 제자들의 부탁은 뒤로하고 필요한 물품만 재촉한 것도 보기 민망하다. 긴 유배 기간 동안 몸과 맘은 척박하였지만 자신이 귀하게 받드는 신의 앞에선 어느 누구의 앞이라도 부끄럼 없이 당당하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해배후엔 가장 귀하고 가까운 이들인 제자들에게도 안사람에게도 소실에게도 어린 딸에게도 결코 당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상 깊은 부분
그녀가 강진으로 다시 쫓겨 내려가게 된 정후 사정은 남은 기록이 없다. 다만 다산이 죽은 며느리 심씨를 위해 지은 [효부심씨묘지명]에서, “시어머니의 성품이 속이 좁아 마음에 차는 경우가 적었다”고 한 것이나, 둘째 학유가 강진에서 돌아갈 때 써준 [신학유가계]에서 “나와 네 어머니는 지기다. 일찍이 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아내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다만 속이 좁은 것이 문제다”라고 반복해서 말한 바, 아내 홍씨의 성정과 관련해 벌어진 일이려니 짐작할 뿐이다. 그녀는 18년간 고통 속에 기다려온 남편이 소실과 그 사이에서 난 딸을 데리고 온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모녀가 집에서 험한 꼴을 당하고 쫓겨나을 때, 다산이 한 일이라곤 고작 양근 사는 박생에게 모녀를 강진 본가로 데려다줄 것을 부탁한 것뿐이었다.(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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