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단상 쓰기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2일차-동문 밖 주막집, 60년간 새긴 말씀

카민셀 2024. 6. 10. 20:00
읽고 단상쓰기#2일차
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삶을 바꾼 만남 (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 정학연이 황상을 위해 다시 써준 [삼근계] 친필 글씨

 

#2일차
동문 밖 주막집, 60년간 새긴 말씀
21p~42p

 

단상 쓰기

다산이 유배지에 도착해 욕스럽고 괴로운 심경 가운데서도 큰 공부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벼슬길이 막혀버린 자식들에게도 공부는 곤궁한 사람이 하는 법이다. 공부는 너희 같은 폐족이 하는 것이며 공부만 해야 한다. 목숨 걸고 해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강조한다.  이것은 다산 스스로에게도 당연한 말이었겠다. 이러한 큰 공부에 대한 다산의 생각과 노력이 제자 황상과의 만남으로 자연스레 이어진 것이 아닐까.

 

15세 때의 황상은 스스로를 가리켜 세 가지 문제가 있다며 둔하고 막혔고 답답하다 했지만 이미 다산은 고만고만한 아이들 중에 송곳 끝처럼 자루 밖으로 비어져 나와 말을 하면 말귀를 금세 알아들어 질박하고 명민한 아이임을 알아보았다고 했다. 세상 모든 우연은 모두 필연이라고 했던가. 다산의 멈추지 않는 공부에 대한 생각이 현실이 되어 황상 같은 훌륭한 제자가 필연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그 스승에 그 제자이니 반드시 만날 수밖에…

 

다산이 15세 때 황상에게 내려준 ‘삼근계’는 현대에도 중요시되는 ‘GRIT’정신과 같아 보인다. 하다가 실패해도 느려도 막혀도 계속해서 노력하는 근성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는 재능과 속도와 순위를 휠씬 더 중시하며 그것만을 인정해 주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공부나 수련에 대한 생각을 일찍부터 멈춰버린다.  다산이 자식들에게  전했던 편지에 ‘과거 시험을 볼 일이 없으니 공부하기에 얼마나 좋은 기회냐’는 말씀은 공부 위의 큰 공부를 알려 주고 있다. 또한 그 큰 공부를 위한 가르침으로 다산이 15세의 황상에게 했던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말씀은 영민한 어린 황상에게 평생의 굉장한 동기부여가 될만한 사랑이 듬뿍 담긴 정성 어린 말씀이었다고 생각된다.

 

성인도 충분한 인정과 사랑이 필요하다는데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아전의 자식으로 태어나 출세 길은 막혀있고 명분도 없는 공부에 대한 방향 키를 잃은 벌써부터 인생의 벽을 스스로 만들려는 15세의 어린 황상에게 이보다 힘이 되는 말이 있었을까.

 

 

 

인상 깊은 부분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들 이 파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면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다. 앞뒤가 꼭 막혔다고? 융통성이 없다고 했지? 여름 장마철의 봇물을 보렴. 막힌 물은 답답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돈다. 그러다가 농부가 삽을 들어 막힌 봇물을 터뜨리면 그 성대한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단다. 얼마나 통쾌하냐? 어근버근 답답하다고 했지?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나중에는 튀어나와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 반반해져서 마침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p.035)
삶을 바꾼 만남 (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