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단상쓰기#5일차
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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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쓰기
다산의 장맛비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나직이 탄성이 나왔다. ‘투덜대지 않겠다’는 제목에서 이미 무언가를 각오를 했음에도 이어 나오는 이 짧은 시 앞에서 갑자기 내 주변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한 듯 멈칫하였다. 표현은 짧으나 빠짐없이 모두 담겨 전달되었다. 그래서 울림이 더하다.
다산은 근심이 오면 ‘근심이 오기에’란 작품을 지어 근심을 맞이하고, 시름을 못 견딜 지경이 되면 ‘시름을 보내며’란 시를 지어 시름을 전송했다니 진정한 어른의 모습에 ‘그럴 때면 그렇게 하면 되는구나’싶어 뜬금없는 위로를 받는 부분이었다.
다산은 날마다 과제를 주어 이를 채우는 정과실천의 방법으로 제자들을 지도했다고 한다.
매일 새로운 제목을 주어 호흡을 가다듬었고, 어휘력을 확장시켜 나갔고 이를 통해 하나의 긴 서사를 짧은 표현 속에 압축하는 훈련과 주변 사물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하는 연습을 반복하게 했다 한다. 그래서 저런 시가 가능하구나 싶다. 그렇게 제자들을 훈련 시켰구나 싶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매일 단상 쓰기도 이와 비슷한 훈련 중이구나 싶어서 새삼 최병일 교수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목적 없는 시간이 아까워 긴 생각 없이 무작정 시작한 독서였다. 동기는 간단했다. 그동안 너무 책을 안 읽었으니까.
읽다 보니 무언가를 읽다 보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면 쓰고 싶어지고 쓰다 보면 잘 쓰고 싶어 지겠다 싶다.
그 과정 속 나 또한 세세한 길잡이와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황상뿐 아니라 나도 꽤 운이 좋구나 싶다.
인상깊은 부분
1904년 여름은 유난히 길었다. 잔혹했다. 마음을 몇 번씩이고 다잡아 추슬러야 했다. 낮에는 제자들 가르치느라 잊고 있던 근심이 밤만 되면 불쑥불쑥 돋아났다. 다신의 시 [장맛비]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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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한 살림 찾는 사람 아예 없어서
온종일 외관을 벗고 지낸다.
썩은 지붕 바퀴벌레 툭 떨어지고
밭두둑엔 팥꽃이 남아 있구나.
병이 많아 잠도 따라 자꾸 줄어도
책 쓰는 데 힘입어 근심을 잊네.
오랜 비를 어이해 괴롭다 하리
맑은 날도 혼자서 탄식했거니.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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