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단상쓰기#20일차
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20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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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쓰기
비슷하거나 나보다 깊은 해안을 가진 분과 독서토론을 하면 시간이 모자를 때가 많다. 이때의 시간이란 것은 2시간이 20분과 같아서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이란 것이 정확한 측량의 단위가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다.
추사와 황상의 첫 만남의 시간도 그랬나 보다. 몇 번의 엇갈림 끝에 추사를 드디어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시를 지어내라. 내 아우들 것도 지어내라. 계속 지어내라며 마치 오랫동안 목말랐던 아이가 샘물을 발견한 듯 황상을 보챈다. 이에 황상은 거침없이 그 자리에서 척척 시를 내놓는다.
내게 시를 보는 눈은 없지만 이 광경 자체에서 황상이라는 인물의 실력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느 때고 몇 번이고 가치있게 빛나는 것을 내놓을 수 있는 내공이라니. 또 그것을 정확히 알아봐 주는 사람의 감탄과 인정이라니. 그 과정 속에서 서로가 느꼈을 반가움을 생각해 보면 금보다 귀한것은 시간이라지만 이때의 흐르는 시간 따위는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탐나는 장면이었다.
인상 깊은 부분
자네가 이미 내 시를 다 읽었네그려. 잠깐 만에 과지초당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았군. 명불허전일세. 명불허전이야. 하지만 이것만으론 안되겠네. 다시 우리 삼 형제 앞으로 시를 한 수씩 더 적어내게. 그래야 내 손님으로 받아주겠네. 내 예전 자네 집을 찾아갔다가 헛걸음한 품도 있고 하니 말이야. 하하. 황상의 붓은 이제 거침이 없었다. …중략…
황상은 두 아우를 위해서도 따로 한 수씩 지어 올렸다. 여기에 다시 정학연이 가세하고, 황상이 화답하는 사이에 밤은 어느새 칠흑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이후 황상은 몇 차례 더 과천과 두릉을 오가며 시를 통해 추사와의 교분을 이어나갔다. 한번 만난 두 사람은 대번에 의기가 맞아 만나기만 하면 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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