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5일차
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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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쓰기
외면이라는 단어 앞에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상기했다. 피해자였던 적이 없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크건 작건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니면 ‘외면’이라는 단어를 ‘외면’한 결과로 어쩌면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되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적 잔인한 폭력에서 살아남은 자의 상처는 사과받고 위로받아야 마땅하지만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사람들도 직접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들과 동일하게 외면을 방패로 무죄의 당위성을 추구하곤 한다. 그 결과 폭력은 죄의식을 축소하고 다시 기회를 찾아 폭력을 반복한다.
적대감이 없는 선량한 독일인과 일본인이 유대인과 한국인에게 사과와 위로를 보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또한 나처럼 별다른 어려움 없이 현대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일반인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전쟁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다. 그러나 대중심리를 절대 천심으로 왜곡하는 요즘 사회에서는 대부분은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느낀다.
인상깊은 부분
만일 내가 독일어 과목에서 1등이 아니었고 내 친구가 최고의 달리기 선수가 아니었다면 우리를 괴롭혔어도 괜찮았단 말인가? 유대인 박해가 죄악인 이유는 단지 유대인들이 이런저런 빛나는 성취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동창들이 터무니없는 대답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점을 얼마든지 그들에게 이야기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p.72)
1940년 베를린의 슈테틴 역근처에서 경찰의 감시하에 끌려가던 유대인들 틈에서 옛 동급생 T를 보았다는 것이다. 몰골이 초췌했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지, 나한테 그런 비참한 모습을 보이는 게 그 아이로서는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을 거라고. 나도 마음이 불편해져서 얼른 외면해버렸어.” 그래, 그의 말이 맞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 아이처럼 우리를 외면했다.(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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