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단상 쓰기

나의 인생 #9 옆방으로 들어가는 문

카민셀 2024. 8. 29. 14:41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9일차

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9일차
옆방으로 들어가는 문 
129p~135p

 

 

단상 쓰기

처음에 마르셀이 앙겔리카를 먼저 알아보았으나 성급히 찾지 않은 이유와 이후 이루어진 재회에서 앙겔리카 자신이 배우라는 꿈을 이룬 것처럼 마르셀도 평론가라는 꿈을 이룬 것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미래를 그렸던 두 유대인 청소년이 기적처럼 살아남아 가망 없던 꿈을 실현하고 다시 만나게 됐다. 평범한 재회에서 볼 수 있는 기쁨으로 선뜻 인사를 하기엔 결코 충분치 않아 조심스럽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 같다. 

살면서 나에게 이런 재회가 있었던가. 살아온 세월이 평범하고 짧다면 짧은 탓에 아직은 없는 거 같다. 다만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런 신중한 마음이 드는 분은 있었는데 언제고 찾아가면 뵐 수 있을 줄 알고 차일 피일 미루다 다시 연락을 하려 했을 때 이미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 떠올랐다. 마르셀과 앙겔리카는 어느 쪽도 죽지 않고 만난 것이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한 나의 비통함의 몇천 배는 되는 비통함과 감격을 동시에 품은 채 말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고 살며 만나는 우연들 속에 삶은 참 무심히도 계속되는 거 같다.

 

 

 

인상 깊은 부분

 

“나는 앙겔리카 후르비치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결국 비겁함이 승리를 거두었다. 나는 더이상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뒤 몇 달을 더 베를린에 머물렀지만 그녀를 찾지 않았다.(p.133)

“그러고 보니 네가 무얼 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네. 무슨 일을 하니?”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난 평론가가 됐어. 독일문학에 대해 글을 써.”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천천히 신중하게 입 을 열었다.(p.134)


“우리는 그럴만한 이유도 없이 살아남았어. 그건 순전히 우연이야. 우린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아비규환에서 선택된 아이들이지, 우리는 표식을 단 사람들이야. 마지막 죽는 날까지 우리는 그 표식을 지니고 살아가겠지. 넌 그거 알고 있니?”(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