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0일차
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0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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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쓰기
9살에 독일로 이주해 이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 10년을 살면서 느꼈을 유대인에 대한 대우와 급기야 어느 날 갑자기 폴란드로 추방당하기까지 놀라울 정도의 탄압을 겪으면서도 무방비 상태로 일관하는 마르셀의 태도에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문학에 심취하면 죽고 사는 생존본능에 대한 센서가 망가지는 것인가. 아니면 무기력해지는 것인가. 급기야 여성도 잠옷 바람으로 강제 추방을 당하는 지경이 되어도 그저 읽을 책을 먼저 챙기는 마르셀을 보면서 문학에 너무 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폴란드로 추방당하고 결국 독일이 침공했을 때 당연한 듯 도망부터 치는 것에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태어나고 9살까지 자란 땅이 아닌가. 그 당시 폴란드는 유대인을 품어주고 유대인 사회가 활발하게 자리 잡은 곳이었는데 이런 나라를 향해 낯선 땅, 문학적으로도 독일에 비해 낙후된 땅이라는 시선이라니… 연합군의 도움으로 당연히 폴란드가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독일군이 점령하더라도 노인들은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마르셀이 그동안 읽었던 그 많은 문학작품 안에는 전쟁에 대한 내용은 없었던 건지 있었음에도 그런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인상 깊은 부분
폴란드에서 나는 어떻게 될까? …..(중략)…. 낯설고 낯선 이 나라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알아듣기는 해도 폴란드어는 간신히 몇 마디 할 줄 알 뿐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직업도 없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없을 것 같은 이 폴란드에서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나? 내 집이라고 해야 발자크의 소설과 여분의 손수건이 들어 있는 서류 가방이 전부였다.(p.143)
싸워보지도 않고 바르샤바를 독일 손에 넘겨줄 수는 없으니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수도를 막아내자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과 나는 생각지도 않게 자동차를 타고 바르샤바를 떠날 기회가 생겼다. ….(중략)…..우리는 독일이 폴란드 전역을 점령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일부는 폴란드 관할로 남을 테니 거기에서 겨울을 넘기면 될 거라고 여겼다. 겨울만 넘기면 될까? 당연히 충분할 것이다. 1940년, 아니 늦어도 1941년이면 연합군이 독일에 완전히 승리할 거라고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동쪽으로 피신하면 바르샤바에 쏟아질 폭격도 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바르샤바에 남았다. 독일군도 나이 든 사람에게는 해코지를 하지 않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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