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2일차
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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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쓰기
나치군이 유대인에게 그토록 주고자 했던 ‘모욕’이라는 사전적 단어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깔보고 욕되게 함’이라는 뜻이었다. 마르셀은 나치군의 야만적이고 잔혹한 사냥을 직접 겪으면서도 그들이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모욕은 줄 수 없었다는 부분에서 참담한 가운데 이상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나의 죽음보다 중요한 ‘나의 무엇’은 아마도 나 자신 외에는 누구도 망가트릴 수 없다는 가치의 발견이랄까. 그러니 사람 아닌 짐승이 나를 깔보든지 말든지 나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확실히 현명해 보였다.
한편으로 한국인으로서 자연스레 일본 침략 당시와 비교를 하게 된다. 전쟁 없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희한한 케이스라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겠지만 침략국이 타민족을 탄압할 때 그들의 자부심과 정신을 폭력으로 말살하려는 시도는 결국 쓸데없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은 부분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나는 나치군 제복을 입은 그 독일 야만인들에게 모욕과 굴욕과 수모를 느꼈을까? 그때 나는 그들이 나를 구타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는 있어도 모욕은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야비한 서커스를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면서 또는 아무 말 없이 감수하는 편이 죽음을 무릅쓰는 것보다 더 옳다고 여겼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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