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 2일차
민희식 옮김 (문예출판사)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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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쓰기
결혼식이 끝나고 남편을 따라나서는 딸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루올 노인의 쓸쓸함에서 세 자매의 결혼식을 치르신 나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자매 중 맏이인 내가 이 감정의 실체를 처음 느낀 것은 나의 결혼식이 아닌 둘째 결혼식 직후부터였다. 신랑 신부의 나이가 꽉 차 양가에서 서둘렀던 결혼이라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혼식이었고 꽤나 즐거운 행사였다. 식이 모두 끝나고 서울까지 올라온 사돈댁까지 모두 댁으로 돌아간 시간과 맞닥뜨렸을 때만 해도 낯설지만 예상범위 안의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후 부모님과 같이 동행한 친정집에서의 몇 시간은 미처 예상치 못한 감정이라 적잖이 당황했었다.
부모님도 막내도 우리 부부도 아무 말 없이 침울한 분위기로 TV만을 보았던 그 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뭔가 크고 중대하지만 그다지 기쁘지만은 않은 일을 그나마 ‘잘’ 치른 후 맥빠짐의 상태랄까. 아니 좀 더 가까운 느낌으로 설명하자면 호상이긴 하지만 초상을 치른 후의 집안 분위기와 흡사했다.
이후 막내 결혼식 때 다시 한번 몇 배의 달하는 이 ‘호상’을 맛봤던 기억이 난다. 십오 년쯤 전의 일이고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딸과 아들의 결혼식 후 그 부모형제가 느끼는 그들의 빈자리의 느낌은 여전히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방금 딸을 결혼시킨 루올 노인은 좀 독특하다. 딸의 결혼 직후의 쓸쓸함의 여운으로 먼저 죽은 아들이 생각나다니? 아니면 먼저 죽은 아들이 있다면 딸의 결혼식이라도 당연한 수순의 생각인 건가? 딸의 결혼이니 딸의 어릴 적 정도가 떠올라야 이 쓸쓸하다 못해 씁쓸한 감정의 공식이 성립된다 생각하는 건 나의 바람인 건가? 아니면 딸이 아닌 아들의 결혼 후엔 홀로 집으로 향하는 쓸쓸함 따위는 맛보지 않아도 됐을 거라는 무의식의 방어작용인 건가? 뭐가 됐든 살아있는 딸보다 죽은 아들이 그리운 시대를 살아온 딸들은 참 서러웠겠다 싶다.
인상깊은 부분
모두, 모두 옛날 일이다. 그때 낳은 아들이 죽지 않았다면 벌써 서른 살이 됐을 것이다. 루올 노인은 몸을 돌렸다. 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빈 집처럼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덧없는 옛 추억으로 멍해진 머리에 우울한 생각이 섞여 달콤하고 다정한 추억이 떠올랐다. 문득 성당쪽으로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성당을 보면 더 슬퍼질 것 같아 곧장 집으로 향했다.
(1부 4장 중 - 밀리의 서제.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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