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인생 26

나의 인생 #16 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6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6일차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196p~208p   단상 쓰기게토에서의 유대인을 향한 억압과 폭력은 자유와 평화를 더욱 갈망하게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망 앞에서도 잠시나마 안도감과 위로를 주는 것이 예술의 힘 인가보다. 마르셀이 말했듯이 예술의 3형제 음악, 미술, 문학 중에 가장 즉각적인 감정 전달의 힘을 가진 것은 당연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밝혀낸 영향력 면에서도 소리의 파동은 거의 빛과 동급이 아니었던가. 이번 장은 읽는 내내 쇼생크 탈출의 명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주인공인 듀플레인이 교도소 방송실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틀어 교도소 전체에 들리게 하는 장면..

나의 인생 #15 어느 미치광이의 푸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5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5일차어느 미치광이의 푸념188p~195p  단상 쓰기점점 게토의 상황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힘들어 말자고 나름 다짐을 했다. 언젠가 홀로코스트 영화 속에서 보았던 충격적이고 참담한 장면들과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떠올렸던 안타까운 마음을 일부 겪었으니 책갈피라도 꽉 붙들고 조용히 읽어가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살인 사건은 없지만 식인사건은 있는 도시라니… 이건 처음 듣는 지옥이었다.  그것도 배고픔에 미쳐버린 아들의 시신을 먹으려 한  어머니의 식인 사건을 읽고 있자니 찰나의 분노를 넘어 슬픔에 잠식당한 채 온 기운이 빠져나간다.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났어야 하는 걸까...

나의 인생 #14 전염병 통제 구역 그리고 게토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4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4일차전염병 통제 구역 그리고 게토180p~187p  단상 쓰기‘문학 평론가’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인간 마르셀은 어떤 사람인 걸까. “남들이 나를 좋게 볼지 나쁘게 볼지 개의치 않고 말한다면, 아무 경험도 없는 내가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라는 게 정확히 무얼 말하는 걸까. ‘주변인들과의 문제’임에도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고 하는 걸 보니 ‘남’에 대한 의식을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한 것은 분명한데 아직 스무 살 즈음의 어린 청년임을 감안하더라도 앞으로의 사회생활에서도 여러 번 되풀이됐다고 하니 경험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추측이다. 게다가 굳이 덧붙여봐야 근거가 될 수 없는 ..

나의 인생 #13 고인과 그의 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3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3일차고인과 그의 딸170p~179p  단상 쓰기헤어진 지 수년이 흘렀어도 마르셀 앞에서 처량한 눈물이 나오는 걸 보니 타티아나에게 마르셀은 사랑이었나 보다. 옛 연인의 냉정한 눈빛 앞에 구슬픈 눈물을 흘리다가도 마르셀의 잘못된 선택을 두고 볼 수 없어 그가 나아갈 길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떠나보내는 마르셀은 그녀에게 영원한 슬픔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사랑의 기쁨은 덧없이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은 영원히 남네.(p.175)마르셀은 이 시구가 반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에 따라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마르셀은 타티아나와 다시 만났을 때도 토지아만 생각했으니 타니아..

나의 인생 #12 사냥의 향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2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2일차사냥의 향연160p~169p  단상 쓰기나치군이 유대인에게 그토록 주고자 했던 ‘모욕’이라는 사전적 단어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깔보고 욕되게 함’이라는 뜻이었다. 마르셀은 나치군의 야만적이고 잔혹한 사냥을 직접 겪으면서도 그들이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모욕은 줄 수 없었다는 부분에서 참담한 가운데 이상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나의 죽음보다 중요한 ‘나의 무엇’은 아마도 나 자신 외에는 누구도 망가트릴 수 없다는 가치의 발견이랄까. 그러니 사람 아닌 짐승이 나를 깔보든지 말든지 나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확실히 현명해 보였다. 한편으로 한국인으로서 자연스레 일본 침략 당시와 비..

나의 인생 #11 시와 전쟁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1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1일차시와 전쟁147p~159p   단상 쓰기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영화 ‘어톤먼트’의 대사가 떠올랐다. 속죄와 용서를 둘러싼 이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도 2차 세계대전 속에 휘말리는데  “사라지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라는 결말 부분의 대사는 영화를 본 지 15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머리와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마르셀이 말한 인생무상을 마딱드려야 사랑 같은 주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말은 언제고 내려놓아야 하는 삶이 되면 오히려 좀 더 삶의 본질에 집중하게 된다는 뜻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불안한 전쟁 속 피난처에서도 무언가 읽을거리를 찾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오솔길을 걸으며 시를..

나의 인생 #10 보이지 않는 짐을 들고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0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0일차보이지 않는 짐을 들고136p~146p  단상 쓰기9살에 독일로 이주해 이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 10년을 살면서 느꼈을 유대인에 대한 대우와 급기야 어느 날 갑자기 폴란드로 추방당하기까지 놀라울 정도의 탄압을 겪으면서도 무방비 상태로 일관하는 마르셀의 태도에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문학에 심취하면 죽고 사는 생존본능에 대한 센서가 망가지는 것인가. 아니면 무기력해지는 것인가. 급기야 여성도 잠옷 바람으로 강제 추방을 당하는 지경이 되어도 그저 읽을 책을 먼저 챙기는 마르셀을 보면서 문학에 너무 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폴란드로 추방당하고 결국 독일이 침공했을..

나의 인생 #9 옆방으로 들어가는 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9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9일차옆방으로 들어가는 문 129p~135p  단상 쓰기처음에 마르셀이 앙겔리카를 먼저 알아보았으나 성급히 찾지 않은 이유와 이후 이루어진 재회에서 앙겔리카 자신이 배우라는 꿈을 이룬 것처럼 마르셀도 평론가라는 꿈을 이룬 것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미래를 그렸던 두 유대인 청소년이 기적처럼 살아남아 가망 없던 꿈을 실현하고 다시 만나게 됐다. 평범한 재회에서 볼 수 있는 기쁨으로 선뜻 인사를 하기엔 결코 충분치 않아 조심스럽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 같다. 살면서 나에게 이런 재회가 있었던가. 살아온 세월이 평범하고 짧..

나의 인생 #8 행복이 되어준 고통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8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8일차행복이 되어준 고통116p~128p  단상 쓰기세월이 흘러 재회한 로테가 폰타네는 어떻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마르셀이 대답을 회피했다고 했을 때 정확히 무엇에 대한 물음이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로테가 다시 질문을 반복하여 멜루지네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마르셀의 대답을 읽고 나서야 로테의 질문은 멜루지네를 빗대어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문학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하지 않았는가.가장 중요한 것은 행간에, 그리고 장면과 장면 사이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고 마르셀이 말했다. 호감을 열정으로 바꾸고, 열정을 종속으로 끌고 가는 것이 사랑이며 고통을 안겨..

나의 인생 #7 가장 아름다운 도피처 연극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7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7일차가장 아름다운 도피처 연극94p~115p  단상 쓰기취향이 없어 고민인 내가 이번 장을 읽으며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여전히 선호하는 취향은 알길 없으나 확실히 덜 선호하는 분야는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는 이유는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런던에서 큰 맘먹고 거금을 주었던 we will rock you를 보다가도 잠들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너는 어떻게 이렇게 화려한 무대 앞에서도 잘 수가 있냐는 20년 전 선배의 핀잔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땐 대답을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무대와 사람들이 너무 화려해서 잠들었던 거 같다. 반면에 간혹 기회가 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