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정약용과제자황상 23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13일차-봄을 잡아둘 방법, 적막한 숲속 집

읽고 단상쓰기#13일차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13일차봄을 잡아둘 방법, 적막한 숲속 집288p~311p  단상쓰기정약용이 다산초당에 정착하고 나서야 안정을 찾고 엄청난 학술적 성과를 이뤘다고 하니 사람에겐 터를 잡고 지내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 다산도 머물기에 몹시 흡족하여 그 기쁨을 담아 꽃에 대해 20수나 시를 지으셨구나.꽃에 대해 이렇다 할 지식이 없어 이참에 20수 여러 꽃을 찬찬히 보다 보니 좋아하는 두 꽃에 시선이 멈춘다. 20수 중  두 수나 차지한 꽃은 수구화구나. 해류의 꽃떨기가 술잔만큼 커다랗고 삼월 꽃들 다 진 뒤에 그제야 피는 것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수국화가 맞구나 싶다. 연달아 나온 치자도 백조같은 여섯 꽃잎 뿜어내는 코끝 기..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12일차-여기까지만 말한다, 유인의 삶이 어떠합니까

읽고 단상쓰기#12일차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12일차여기까지만 말한다, 유인의 삶이 어떠합니까266p~287p   단상쓰기다산의 [제황상유인첩]을 보니 누구나 소망할 집터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었다. 다산은 청복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나름 소박한 선비의 집터를 쓴 거 같다. 그러나 산 좋고 물 맑은 확 트인 곳에 순창 설화지로 도배한 벽으로 남향집을 지어 천 삼사 백 권의 책을 두루 갖추고 앞 뜰엔  연꽃 수십 방을 띄울 크기의 연못에 붕어를 키우고 물이 넘칠 때 닿는 땅엔 채마밭을 만들고 더 나아가 직접 농사짓지 않아도 될 전답까지 확보한 뒤, 뒤 뜰엔 잠실을 갖출 숲까지 두루두루 소유한 그런 집을 갖는다는 건  왠지 열복과 더 유사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맘 맞을 시원한 성격..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11일차-네 아들은 내 손자다, 취생몽사

읽고 단상쓰기#11일차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11일차네 아들은 내 손자다, 취생몽사247p~265p  단상쓰기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다산의 취몽재의 풀이가 돋보인다. 이름난 술꾼인 황상의 아버지 황인담이 자신의 집을 아예 술 마시다 꿈꾸듯 간다는 [취몽재]라 짓겠다며 글을 청한다. 평소 음주를 멀리하라 가르치던 다산은 이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전시켜 ‘취했으나 취하지 않을’의 뜻풀이로 풀어내었다. 글자도 음도 뜻도 황인담에게 더없는 맞춤이 없을 만큼의 유용함이였다. 문인의 실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러나 끝내 황인담은 술병으로 환갑 전에 생을 마감했다. 훌륭한 가르침에도 받는 자의 의지와 깨달음 없이는 그 완성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공평한 듯 애통하다. 곁눈으로 지켜보는..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10일차-다산의 아들 노릇, 귀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일

읽고 단상쓰기#10일차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10일차다산의 아들 노릇, 귀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일219p~246p   단상쓰기 이번 회차는 눈길이 멈추는 곳이 많았다. 닭을 치겠다는 둘째 아들의 소식에 다산이 당부한 끝장을 본다는 격물치지 공부법으로 시작해 변상벽의 그림까지 아우르는 지식의 깊이와 넓이가 돋보였고 특히 오래 멈추어 감동으로 남은 부분은 정약전이 다산에게 보냈고 황상이 온 마음을 담아 보관하여 지금까지 전해진 정약전 편지의 일화이다. 사람은 사람을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사람은 나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을 향해 신의와 의리를 바친다는 말에 동감한다. 정약전의 편지글은 황상에게 이 같은 작용을 하고도 남았으리라.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 그..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9일차-시 짓기 시합, 두륜산 유람

읽고 단상쓰기#9일차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9일차시 짓기 시합, 두륜산 유람192p~218p   단상쓰기첫 만남의 인사전에 먼저 시를 지어 보내고 다시 시로 화답하는 예의를 갖춘 멋들러진 인사법이 인상 깊었다. 스승과 아버지를 통해서 들은 것밖에 없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 인사글을 보낸다는 게 현대에선 불가능에 가까워 귀하게 느껴졌다.스승과 아버지를 통하는 귀한 만남이니 예의를 다하는 것이 당연했다 해도 만남의 시작을 이리 진심으로 공을 들이니 한번 마주치는 인연이 대를 이어가며 귀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겠구나 싶다. 시로 첫인사를 하고 만나서는 돌림자로 시 짓기 시합을 하며 인연을 다지니 선비들의 시 사랑이 대단하다. 그렇게 만난 귀한 만남이 꼭 같은..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8일차-우물우물 시간을 끌었다, 한겨울의 공부방

읽고 단상쓰기#8일차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8일차우물우물 시간을 끌었다, 한겨울의 공부방168p~191p   단상쓰기하필 비가 내려 진창 길을 뚫고 오는 바람에 안 그래도 옹색했을 아들의 몰골을 아예 처참하게 만들어버려 안타까웠다. 그렇게 힘겹게 찾아온 아들을 알아본 다산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시를 보니 서글프다 못해서 처절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부러운 장면이 있었다. 부자의 몇 년 만의 상봉은 서글펐으나 아들의 공부를 손수 가르치겠다 명하고 아들과 아버지가 올라간 보은산방의 시간은 더없이 값져 보인다. 다신은 아들에게 “다시는 갖지 못할 시간일 것이니라. 간절하게 공부해야 한다.”라며 아들을 가르친다. 정말 그렇다. 쉽게 갖지 못할 시간이다. 그렇게 탄생한 아버..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7일차-내외가 따로 자라, 이제부터 시사가 원만하겠다.

읽고 단상쓰기#7일차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7일차내외가 따로 자라, 이제부터 시사가 원만 하겠다.137p~167p   단상 쓰기다산은 정이 많았지만 뾰로통하게 잘 삐쳤다는 부분에서 그게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는데 혜장의 제자인 승려 수룡에게 보냈다는 답장 말미에 쓰인 ‘과거의 사람이’라는 표현에 눈을 의심했다. 진짜 이렇게 쓰셨다고? 조선 철학자의 위엄 있고 단정한 모습에서 한참 벗어난 표현이라 오히려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다. 더구나 이런 편지로 제자들을 다그치는 것이 다산의 특기 중 하나 셨다니 제자들이 웬만해선 이 스승의 매력에 걸려 게으름을 피우기 어렵겠다 싶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친 적은 없지만 게으름을 피우는 아이들도 대게 맺고 끊음이 단호한 선생님 앞에선 태도를 ..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6일차-20년 공부가 물거품 입니다, 채마밭을 일구고픈 욕망

읽고 단상쓰기#6일차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6일차20년 공부가 물거품 입니다, 채마밭을 일구고픈 욕망112p~136p  단상 쓰기다산이 채소 가꾸기를 그토록 바랐다는 부분을 읽다가 채소 기르기의 달인이신 친정엄마를 떠올렸다. 동시에 베란다에 심어진 몇 포기 상추와 토마토에게 아침마다 인사하며 살피는 딸을 떠올렸다. 한 세대를 건너뛴 이 여인들의 채소 기르기 애정은 남다르다. 채소뿐 아니라 식물도감 수준인 친정엄마와 유년기에 사과를 먹다가 몰래 화분에 사과씨를 심어 싹을 틔운 경력을 가진 딸아이는 식물을 키우고 살피는데 내가 이해 못 할 애정이 있다. 다산도 이 마음으로 세밀한 바램이 담긴 시를 8수나 지으셨구나 하다가 끝내 이루지 못한 그 바램이 안쓰러웠다. 시를 짓는다는 ..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5일차-새벽의 생각, 동기부여 학습과 칭찬 교육

읽고 단상쓰기#5일차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5일차새벽의 생각, 동기부여 학습과 칭찬 교육92p~111p   단상쓰기다산의 장맛비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나직이 탄성이 나왔다. ‘투덜대지 않겠다’는 제목에서 이미 무언가를 각오를 했음에도 이어 나오는 이 짧은 시 앞에서 갑자기 내 주변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한 듯 멈칫하였다.  표현은 짧으나 빠짐없이 모두 담겨 전달되었다. 그래서 울림이 더하다.  다산은 근심이 오면 ‘근심이 오기에’란 작품을 지어 근심을 맞이하고, 시름을 못 견딜 지경이 되면 ‘시름을 보내며’란 시를 지어 시름을 전송했다니 진정한 어른의 모습에 ‘그럴 때면 그렇게 하면 되는구나’싶어 뜬금없는 위로를 받는 부분이었다. 다산은 날마다 과제를 주어 이를 채우..

삶을 바꾼 만남 #단상 쓰기 4일차-이 시는 남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 학질 끊는 노래

읽고 단상쓰기#4일차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문학동네, 2011)  #4일차이 시는 남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 학질 끊는 노래69p~91p  단상 쓰기스승이 제자의 병치레가 걱정되어 안부를 물을 수는 있지만 노래까지 지어 보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 아닌가? 쓰인 글씨를 보니 그동안의 흘림체는 안 보이고 반듯반듯 글자마다 정성이 한가득이다. 게다가 억울한 백성이 스스로 남근을 자른 기막힌 사연 앞에 황상이 지은 시를 보고 비가 오더라도 바로 오라며  황상의 시를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어서는 안된다고 제자의 안위를 각별히 챙기며 걱정하는 모습에서 다산이 황상을 얼마나 아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다산 자신도 공분을 못 이겨 황상의 시에 화답하듯 제자와 같은 구절의 반복으로 같은 제목의 시를 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