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2

나의 인생 #12 사냥의 향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2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2일차사냥의 향연160p~169p  단상 쓰기나치군이 유대인에게 그토록 주고자 했던 ‘모욕’이라는 사전적 단어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깔보고 욕되게 함’이라는 뜻이었다. 마르셀은 나치군의 야만적이고 잔혹한 사냥을 직접 겪으면서도 그들이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모욕은 줄 수 없었다는 부분에서 참담한 가운데 이상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나의 죽음보다 중요한 ‘나의 무엇’은 아마도 나 자신 외에는 누구도 망가트릴 수 없다는 가치의 발견이랄까. 그러니 사람 아닌 짐승이 나를 깔보든지 말든지 나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확실히 현명해 보였다. 한편으로 한국인으로서 자연스레 일본 침략 당시와 비..

나의 인생 #11 시와 전쟁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1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1일차시와 전쟁147p~159p   단상 쓰기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영화 ‘어톤먼트’의 대사가 떠올랐다. 속죄와 용서를 둘러싼 이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도 2차 세계대전 속에 휘말리는데  “사라지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라는 결말 부분의 대사는 영화를 본 지 15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머리와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마르셀이 말한 인생무상을 마딱드려야 사랑 같은 주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말은 언제고 내려놓아야 하는 삶이 되면 오히려 좀 더 삶의 본질에 집중하게 된다는 뜻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불안한 전쟁 속 피난처에서도 무언가 읽을거리를 찾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오솔길을 걸으며 시를..

나의 인생 #10 보이지 않는 짐을 들고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10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10일차보이지 않는 짐을 들고136p~146p  단상 쓰기9살에 독일로 이주해 이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 10년을 살면서 느꼈을 유대인에 대한 대우와 급기야 어느 날 갑자기 폴란드로 추방당하기까지 놀라울 정도의 탄압을 겪으면서도 무방비 상태로 일관하는 마르셀의 태도에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문학에 심취하면 죽고 사는 생존본능에 대한 센서가 망가지는 것인가. 아니면 무기력해지는 것인가. 급기야 여성도 잠옷 바람으로 강제 추방을 당하는 지경이 되어도 그저 읽을 책을 먼저 챙기는 마르셀을 보면서 문학에 너무 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폴란드로 추방당하고 결국 독일이 침공했을..

나의 인생 #9 옆방으로 들어가는 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9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9일차옆방으로 들어가는 문 129p~135p  단상 쓰기처음에 마르셀이 앙겔리카를 먼저 알아보았으나 성급히 찾지 않은 이유와 이후 이루어진 재회에서 앙겔리카 자신이 배우라는 꿈을 이룬 것처럼 마르셀도 평론가라는 꿈을 이룬 것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미래를 그렸던 두 유대인 청소년이 기적처럼 살아남아 가망 없던 꿈을 실현하고 다시 만나게 됐다. 평범한 재회에서 볼 수 있는 기쁨으로 선뜻 인사를 하기엔 결코 충분치 않아 조심스럽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 같다. 살면서 나에게 이런 재회가 있었던가. 살아온 세월이 평범하고 짧..

나의 인생 #8 행복이 되어준 고통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8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8일차행복이 되어준 고통116p~128p  단상 쓰기세월이 흘러 재회한 로테가 폰타네는 어떻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마르셀이 대답을 회피했다고 했을 때 정확히 무엇에 대한 물음이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로테가 다시 질문을 반복하여 멜루지네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마르셀의 대답을 읽고 나서야 로테의 질문은 멜루지네를 빗대어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문학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하지 않았는가.가장 중요한 것은 행간에, 그리고 장면과 장면 사이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고 마르셀이 말했다. 호감을 열정으로 바꾸고, 열정을 종속으로 끌고 가는 것이 사랑이며 고통을 안겨..

나의 인생 #7 가장 아름다운 도피처 연극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7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7일차가장 아름다운 도피처 연극94p~115p  단상 쓰기취향이 없어 고민인 내가 이번 장을 읽으며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여전히 선호하는 취향은 알길 없으나 확실히 덜 선호하는 분야는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는 이유는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런던에서 큰 맘먹고 거금을 주었던 we will rock you를 보다가도 잠들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너는 어떻게 이렇게 화려한 무대 앞에서도 잘 수가 있냐는 20년 전 선배의 핀잔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땐 대답을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무대와 사람들이 너무 화려해서 잠들었던 거 같다. 반면에 간혹 기회가 닿..

나의 인생 #6 한꺼번에 찾아온 사랑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6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6일차한꺼번에 찾아온 사랑 이야기74p~93p  단상 쓰기갑자기 유명한 문학 비평가의 자서전을 읽게 됐을 때 두서없이 떠오른 의문 하나가 있었다. 한 평생 영혼을 담아 문학책 읽기를 사랑한 사람이 어째서 직접 쓰는 즐거움인 작가로서의 길은 가지 않은 걸까. 정확히는 경지에 오른 비평가가 작가로서의 삶의 유혹을, 그 동경에서 오는 괴리감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마르셀의 매형은 십 대의 이런 마르셀을 일찍부터 꿰뚫어 본듯하다. 허긴 10년 치의 금지된 문학 관련 주간지를 수집하고 소중히 감출 정도라면 문학을 ‘대단히’사랑한 사람이었고 그 역시 현실과 문학사이에서  적지 않은 고민을 하..

나의 인생 #5 실패로 끝난 인종학 수업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5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5일차문자에 대한 경외감62p~73p  단상 쓰기외면이라는 단어 앞에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상기했다. 피해자였던 적이 없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크건 작건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니면 ‘외면’이라는 단어를 ‘외면’한 결과로 어쩌면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되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적 잔인한 폭력에서 살아남은 자의 상처는 사과받고 위로받아야 마땅하지만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사람들도 직접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들과 동일하게 외면을 방패로 무죄의 당위성을 추구하곤 한다. 그 결과 폭력은 죄의식을 축소하고 다시 기회를 찾아 폭력을 반복한다.  적대감..

나의 인생 #4 문자에 대한 경외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4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4일차문자에 대한 경외감43p~61p  단상 쓰기 저자의 젊은 열정은 [돈 카를로스]의 진취적인 문장으로 기억된다면 나의 젊음이 애정을 준 문장은 “진실은 없다. 진실을 향한 의지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니체의 문장이었다. 놀랍도록 어리석고 독단적이었던 스무 살 즈음의 나는 니체의 의도를 정반대로 오해하여 이후의 오랜 시간을 허무주의 안에서 허덕여왔다. 그럼에도 삶의 무의식은 무언가를 찾느라 내내 답답하였는데 최근 몇 년에 이르러서야 서적을 뒤적이며 나름대로 어렴풋이 ‘진실’일지 ‘신’일지 모를 궁금증에 대한 갈망을 어느 정도 방향성을 가지고 맘 편히 놓아버릴 수 있었다. 누군가가 믿는 진실이야..

나의 인생 #3 케스트너 씨. 영혼을 위로하는 작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나의 인생: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 3일차이기숙 역 (문학동네, 2014)  #3일차케스트너 씨. 영혼을 위로하는 작가33p~42p  단상 쓰기책의 초반이니 당연히 성장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에리히 케스트너라는 작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위대한 비평가의 자서전 앞부분부터 한 꼭지를 따로 빼서 세세히 언급할 정도의 작가라니 대단한 의미가 있겠다 싶어 에리히 케스트너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취향이 없는 나에게 “취향 찾기’에 고민이 생긴 요즘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더구나 이 위대한 비평가가 스스로 밝힌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취향’에 대한 책이라니 몹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에리히 케스트너 박사의 가정용 치유 시집]을 당장 찾..